언론보도자료 (코로나 관련 의료인의 역할)

COVID-19 대유행 시대의 전담 병원 근무 경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 윤석화


도~솔 파미레도~솔

스타워즈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집니다.

외상 당직 휴대폰의 벨 소리 입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이하 NMC)이 외상 센터를 다시 운영하면서 자주 전원 요청을 주시던 OOO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중증 외상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 지 문의하는 전화입니다. 죄송하지만, 현재는 코로나 전담 병원이라서 환자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2월 COVID-19 대유행의 조짐이 보이면서부터 NMC는 전담 병원의 역할을 수행 할 준비를 했습니다. 인력을 다시 배분하고, 음압 병실 공사를 하고, 중환자실에 유리 칸막이 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입원하고 있던 모든 환자를 타 병원으로 이송 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가능할까 걱정이 앞섰는데, 각 병원 선생님들께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니 감사하게도 환자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환자의 전원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청와대까지 환자의 민원이 올라가기도 했으니까요. 3~4일 간 병원 이송 관련 부서가 마비되고, 그 환자의 담당 선생님은 3일동안 출근부터 퇴근까지 보호자 분들을 설득하느라 목이 쉬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3월 6일, 모든 상황을 정리 시키고 전담 병원으로서 역할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20명으로 시작했던 환자들이 65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외래 스케줄은 반 이하로 줄였으며, 외과 계열은 소량의 당일 수술만이 허용되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당직 스케줄에 참여하였고, 호흡기 감염 내과는 주치의 업무를, 전문의들은 전공의의 업무를, 전공의들은 인턴의 업무를 수행하였고, 인턴 선생님들은 기본적인 업무를 하였습니다. 거기에 저희 외상 센터 전문의들은 COVID-19가 확진 된 외상 환자의 주치의를 겸해서 맡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전체 병원이 COVID-19 진료에 매달리게 되었고, 그에 따른 부작용들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NMC는 전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노숙인과 행려인을 치료하는 병원 중 하나입니다. 일반 병원에서 그분들을 치료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문제는 그런 노숙인과 행려인이 이제 마음 놓고 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내과 치료를 장기적으로 받아오다가 악화되어 입원이 필요한 경우 병원 소개를 해드려도 예전의 좋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리시며 그냥 귀가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선생님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희 단체 메시지 방에는, 한 선생님께서 그런 분들에 대하여 속상하고 애틋한 마음을 토로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 불쌍한 분들은 대체 어디서 치료받아야 하냐고……
외상 센터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형 병원에서는 외상 환자를 보기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저희 외상 센터가 작년 3월에 시작하여 불과 몇 개월 안되어서 환자가 가득 차고 넘쳤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저희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제 외상 환자들을 받지 못하면서, 다시 서울은 중증 외상 환자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한 곳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외상 센터 뿐만 아니고, NMC의 많은 선생님들이 환자를 받지 못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계시기도 합니다. 특히나 수술과 시술을 주로 하는 과에서는 벌써 3달째 수술 손을 놀리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요. 그건 마치…… 우리 학회 선생님들께 초음파를 3개월동안 한 번도 못보게 한 것과 같은……?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나라 전체 환자 상황에 따라 바뀌는 물품 공급 상황입니다. 중환자실 기본은 장기 입실 시 Level C + PAPR, 단기 입실 시 Level D를 입고 이 상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정된 장비 상황은 우리를 옥죄여 옵니다. PAPR 후드를 닦아서 한달에 하나씩만 쓰라고 하여 간호사들을 좌절시키는 상황이 있었는가 하면, 장갑이나 방호복의 적정 사이즈가 부족한 경우도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 몸이 좀 커서 적절한 방호복 사이즈가 없을 때에는 턱과 목이 다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 날은 샤워를 과도하고 하고 집에 들어가더라도 달려오는 아이들을 안아 주기가 꺼려지더라구요. 가장 겉에 착용하는 방수 앞치마는 비닐 앞치마로 바뀌게 되었고, 덧신 두개를 신던 것은 지금은 겉 덧신 하나만 착용하고 있습니다. Level C 방호복은 공급이 부족하여 모두 Level D로 대체되었습니다. N95 마스크도 소독해서 재사용 해야 한다고 버리지 않고 다 모아 갔었는데, 공급이 해결되었다고 하니 천만 다행입니다.

이제 일별 추가 확진자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면서 저희 병원을 비롯한 전담 병원들이 일부 정상 진료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담 병원의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대유행 시대를 헤쳐나가고 계신 모든 선생님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있듯이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고, 2차 파도를 대비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그런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2020년 봄의 경험이 귀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